내일 장애인의 날… 좌절 딛고 일어선 두 인생

컨설턴트 된 강지훈씨
실험중 ‘펑’… 두다리 잃고도 뚜벅뚜벅

▲ 실험실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공학도에서 컨설턴트로 변신한 강지훈씨.“장애인이 거리를 걸어가더라도 동정보다는 그냥 개성으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주완중기자
 
강지훈(姜志勳·30)씨가 건넨 명함에는 ‘딜로이트 컨설팅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다국적 컨설팅회사의 새내기 직원답게 줄무늬 넥타이와 남색 수트, 검은 금속테 안경, 귀밑까지 자른 머리가 깔끔해 보였다. 저녁 8시 퇴근 후 그의 직장 근처인 여의도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강씨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무릎 부분에 달린 의족을 두드려 ‘툭’하는 둔탁한 소리를 들려줄 때조차도.

그는 2003년 5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실 폭발사고 피해자다. 실험실 유리창이 전부 날아갈 정도로 큰 폭발로, 연구실에서 함께 실험 중이던 후배는 현장에서 숨졌고 그는 두 다리를 잃었다.

KAIST 로켓 실험중 폭발

정신 차려 보니

멀쩡하던 다리 사라져…

이젠 IT 컨설턴트로

장애인 돕는게 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가 10분 뒤쯤 정신을 차렸을 때 다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의외로 마음이 차분했어요. ‘아, 내가 장애인이 됐구나’ 담담하게 현실이 받아들여졌어요.” 다른 연구원이 실험을 마치고 방치해 둔 가스통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수소와 공기가 혼합된 가스통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항공우주공학 박사과정 4년차로, 로켓전문가를 꿈꾸던 강씨의 인생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1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학교로 복귀했지만 박사학위를 눈앞에 두고 휴학했다.

그렇게 10년간 머물렀던 캠퍼스를 떠난 강씨는 올해 초 직장에 입사해 IT업체들을 컨설팅하는 일을 한다. 그는 “공학 지식에 경영 지식을 합쳐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장애청년 드림팀’ 일원으로 영국을 견학하면서,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이라도 장애인을 위해 쓰려면 ‘시장 원리’를 아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가 컨설턴트로 변신한 이유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한창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젊은 공학도는 사고 이후 광장으로 나왔다. KAIST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실험실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절단장애인협회’에서 홍보이사직을 맡아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에게 쓸모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실험실 안전관리체계 조성과 재해 발생시 보상방법을 규정한 ‘연구실 안전법’이 최근 제정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장애인이 된 이후 달라진 건 뭘까. “별로 없어요. 좋아하는 운동을 못한다는 것과 수동기어 자동차를 몰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모집한다는 기사를 봤을 땐 좀 아쉬웠어요.” 그는 “공부를 계속했다면 평범하고 정해진 길을 갔겠지만 장애 덕분에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지고 인생이 다이내믹해졌다”며 자신이 “운좋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늘 낙천적인 그의 태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종종 잊곤 한다. 막내 아들의 사고를 접한 뒤 그의 부모들이 심한 고혈압을 앓아 쓰러졌다는 사실과, 마포의 원룸에서 홀로 자취 중인 이 청년이 출근 준비를 위해 매일 아침 한 시간 반씩 휠체어를 타고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의족과 목발에 의지해 자리를 떠났다. 느린 걸음이었지만, 정면을 응시하고 허리를 쭉 편 채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그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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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4/200604190032.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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