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anything starts to go wrong,
the spillover effectsare so enormous,
and it takes an indefinite time to recover...

I thought I recovered,
but one thing started to go wrong,
and it's all spreading...

I hate to be pessimistic like the way I used to be,
I had hard time to become anoptimistic person,
but the world isn't helping me much on that...

All I can do is try my best to fix it,
and hope it's only temporary...

Posted by 【洪】ILHONG
,













 
사진 작가 최민식, 시인 조은이 엮어낸 감동의 사진 에세이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삶이 고단하고 힘드신가요?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항체’가
여기 있습니다. 50년간 인간을 주제로 삶의 진실을 파헤쳐왔던 사진작가
최민식(76)씨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행'을 껴안는 그의 넉넉한 품이
그려집니다. 최근 시인 조은씨가 최씨와 함께 펴낸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샘터)는 고단한 삶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최씨는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장사하다 끌려가는 아주머니와 고구마 몇 개 얹어놓고 행상을
벌이는 아이와 어머니, 길가에 지친 몸을 기댄 부자(父子) 등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이 연이어집니다. 그 자신 또한 팔리지 않는 사진만 찍느라 줄곧 가난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네들 삶의 진실이 더욱 진하게 그의 사진에 묻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최씨의 카메라가 이처럼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치열하게 움직이며 찍어낸
사진에 시인 조은씨가 간결한 글로 새로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최씨가 195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담아온 여러 서민들의 모습과
느낌에 감동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찍고 써 내려간 과거의 불행으로 잠시 되돌아가봅니다.
과거를 보면서 힘겨운 현재를 잠시 위로 받아봅니다.
인생을 담은 노사진작가와 한 중견시인의 질퍽한 감동의 사진에세이를
이제부터 간략하게 소개해봅니다.




어머니...어머니












왜 어머니의 팔은 아이를 품어줄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어린 소녀는 힘겹게 누군가를 업고 있는 것일까요?
(1969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서 있는 어머니 젖을
누나 등에 업힌 채물고 있는 아이의 모습.
어머니는 손에 밴 비린내 때문에 아이를 안지 못 하고 있다.)














거리의 어머니는 아이의 잠을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의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이 순간, 손을 내밀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1961년 부산.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이 뒤에 있는 간판과 대비된다.)














삶을 응시하는 자들이 키워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1976년 부산. 자갈치 시장의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자장면으로 점심식사를 대신 하고 있는 모습)














고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질서와
안정감이 외면하고 싶을 만큼 서글픕니다.
(1959년 부산. 한 부둣가에서 생계를 위해 찐고구마를 팔고 있는
모자의 모습은 오히려 잘 먹지 못 해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일찍 어른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미래가 암초처럼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1957년 부산. 이 시절에는 두 소녀처럼 학교도 못 가고
가사를 돌보며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거리의 부녀를 눈여겨보세요.
손으로 소음을 막아주고,
다리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잡아주며
아버지는 딸아이의 잠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1963년 부산)



인생이란...












본질에서 떨어져야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빨래는 남루를 씻어버린듯
눈부시고 햇살은 명랑한 아이들처럼 골목을 뛰어다니지요.
(1963년 부산. 태극촌이라는 종교마을의 전경.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이 판자촌은 당시 북한과
타지방에서 이주해온 피난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불순함이라고는 없는 노동에
저토록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때로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1972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한 노점상 여인이
단속반에 끌려가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














육신의 한 부분을 미리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삶도 도무지 가벼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1985년 부산. 극장가에서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그곳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모습)














삶의 속도에 의해서 진창을 벗어날 때도 있고
속도 때문에 진창에 처박힐 때도 있습니다.
(1978년 부산. 역전에서 비오는 날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물이 튈까봐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














이토록 다른 정서적 이질감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도
아직은 우리의 정신이 여유 있기 때문이지요.

(2002년 부산. 역전의 공중전화에서 두 여인이 전화를 걸고 있지만
그 모습이 묘한 대비를 보이고 있는 장면)



희망은...












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

(1975년 부산. 범어사에서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














어른들 세계로 팔을 쭉 뻗는 아이들은
언제나 밝은 것을 희망합니다.
그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열심히 빛을 향해 발돋움하겠지요.
(1980년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놀고 있던 두 소녀가
손을 번쩍 올리고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모습)














자신의 삶을 스스로 더 가파른 곳에
올려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라야 평지에 있는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것일까요?
(1968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짐을 기다리던 지게꾼이
사진작가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잘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외로움과 죽음의 관념을 이겨내고
비로소 환해지는 우리의 영혼처럼...

(2004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할머니 머리에 잠시 앉았다.)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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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딛고 축구 태극마크 단 여고생

여자청소년대표 박지영, 아시아 정상 도전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03.30 10:09 27'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태극마크를 단 여고생 축구선수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내달 8일부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제3회 아시아여자청소년(U-20)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청소년대표에 뽑힌 공격수 박지영(18.울산 현대정보과학고).

박지영은 한국의 2회 연속 우승을 위해 파주NFC(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백종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동료 19명과 함께 훈련을 거듭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키가 155㎝로 공격수로서는 매우 작은 체격. 팀 전체 선수 가운데 가장 작으며 같은 공격수 박은선(서울시청)의 경우 177㎝로 박지영보다 20㎝이상 크다.

이처럼 키가 작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골반이 뒤틀려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영은 왼쪽 다리가 오른쪽보다 2㎝가량 길며 이 때문에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았다.

박지영이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경남 김해가 집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운동장에서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매일 공을 찼고 이를 지켜보던 축구부 감독이 여자 축구부가 있는 울산 청운중학교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저 축구가 좋아 열심히 운동을 하던 박지영은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몸이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훈련을 마친 어느날 다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우측 고관절 내회전’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병명을 듣게 됐다. 이는 오른쪽 다리뼈가 골반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 증상. 의사는 ‘운동 절대 불가’ 진단을 내렸고 부모님도 축구를 그만두라고 말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라도 공을 차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축구를 계속하게 됐고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경기나 훈련 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통은 찜질이나 마사지로 삭였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빛을 본 것은 고교 2년 때인 2005년. 박지영은 경남 남해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청소년(U-17)축구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에 전격 발탁됐고 자신에게 처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와 첫 경기(15-0 승)에서 2골을 몰아 넣은 박지영은 인도와 두번째 경기(7-0 승)에서도 2골을 폭발시켰으며 태국과 8강전(3-2 승)에서는 한 골을 뿜어내면서 팀내 최다골인 5골을 기록, 자신의 진가를 알렸다.

체격 조건은 달리지만 볼을 다루는 재주와 골 결정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

김삼수 현대정보과학고 감독은 “작은 키에 헤딩슛까지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골 센스가 대단하다. 개인 기량 하나만 보고 평가를 한다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칭찬했다.

박지영의 꿈은 해외진출이다. 가장 좋아한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이영표(29.토튼햄)처럼 한국보다 축구 선진국에서 자기 기량을 펼치고 싶다.

이 때문에 이번 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한 국내 여자축구 해외진출 1호 이진화(20.일본 고베 아이낙)에게 비법(?)을 전수받고 있으며 틈나는 대로 영어와 일어도 공부하고 있다.

박지영은 “다리가 아파서 해외진출이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대회에서도 열심히 뛰어 한국의 대회 2연패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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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se/news/200603/200603300205.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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