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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8.21 페렐먼, 지금...
  3. 2006.05.08 “딸 포탄 화상 꼭 없애주세요”

딸을 위하여 42.195㎞!

People 2006. 10. 27. 04:13

딸을 위하여 42.195㎞!
춘천마라톤 풀코스 도전 김호규씨
큰딸 난치병으로 6년째 투병 오직 그에게 희망주기 위해…
입문 1년새 풀코스 3번 완주

아버지에게 42.195는 희망의 숫자다. 1년 전 700m를 달리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던 40대 가장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 만 6년째 투병중인 스무 살 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마라톤 경력 1년차인 김호규(47·경기도 구리시)씨 이야기다.

6년 전까지 김씨는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2000년 어느 날 중2인 큰 딸 인영이가 “몸에 힘이 없다”고 했을 때, 그저 운동 부족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의정부에 있는 수락산도 올라가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 다니게 했다. 그런데 계속 힘이 없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녀봐도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피부과에 다녔다. 소용없었다. 그 해 12월 서울대병원에서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버지는 주저앉아 울었다. 불행은 예고가 없었다. “중2 때 인영이 키가 173㎝이었어요. 다리가 길어서 달리기만 하면 늘 1등을 하던 아이가 숨쉴 힘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끝이 아니었다. 아내마저 만성신부전증이 악화됐다. 김씨는 딸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과 아내가 누워 있는 투석실을 오가며 간병을 했다. 아내는 2년 전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상당히 나아졌다.

▲ “인영이가 다시 일어서는 그날까지!”아빠는 달린다. 근무력증에 시달리는 딸 인영이를 업고서 김호규씨가 활짝 웃는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출전하는 김씨에게 마라톤은 달리기가 아니다. 희망이다.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그러나 스무 살 숙녀가 된 인영이는 그대로다. 약을 타 먹으며 집에 누워만 있는 딸. 운영하던 학원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힘든 아버지는 술에 많이 기댔다. 길을 찾아야 했다. “힘겹게 투병을 하는 딸을 위해 제일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마라톤이었다. 지난해 11월 1일 가족과 학원 직원들 앞에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달리기 연습 첫날 700m를 못 가서 주저앉았다. “병 간호도 힘든데 내가 왜 이런 일을…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인영이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연습을 계속 했어요.”

지난 3월 서울마라톤 대회 하프코스 출전 직전에도 5㎞를 뛰지 못하는 몸이었다. 친구들은 “무모하다”고 말렸다. 하지만 20㎞가 넘는 거리를 이를 악물고 달렸다. 2시간6분 만에 결승선을 넘었다. 그리고 6월 양평 이봉주마라톤대회. 그는 42.195㎞ 풀코스에 도전했다. 30㎞를 지나면서 “허리 아래가 완전히 없어진 느낌”이었고 38㎞ 지점에선 다리에 쥐가 나 도로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낙오자를 태우는 버스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때마다 딸아이 얼굴이….” 이를 악물고 결승선을 넘었다. 4시간59분42초. 김씨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찾아 집에 누워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해냈다.” 딸은 문자로 대답했다. “아빠 자랑스러워요.” 온 몸에 있는 힘을 손가락에 모아 보낸 문자였다. 돌아온 김씨는 제일 먼저 누워 있는 딸에게 완주 메달을 걸어줬다.

1년 사이 김씨는 풀코스 3번, 30㎞코스 1번, 하프코스를 6번 달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아내 차정숙(45)씨는 달리고 나면 일주일씩 파스를 붙이고 사는 남편을 보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누워 있던 인영씨가 아빠 편을 든다. “아…빠 때문에 큰 힘이 돼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29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인 김씨는 매일 왕숙천 제방도로를 따라 15㎞를 달린다. “지난 4월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요. 이번 대회와 같은 코스였죠. 이번엔 꼭 완주할 겁니다.”

언제까지 달릴 생각이냐고 물었다. 김씨가 웃으면서 앨범을 하나 가져왔다. 마라톤 완주 증명서와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에서 코팅된 종이 2장을 꺼냈다. 1주일 전쯤 직접 만든 것이라며 가슴과 등 번호표 아래 달고 뛸 생각이라고 했다. 물음에 대한 답은 그 종이에 쓰여 있었다. ‘인영이가 일어서는 그날까지.’ 아빠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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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10/200610270031.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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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먼, 지금...

People 2006. 8. 21. 11:49

“돈도 명예도 싫다” 老母와 극빈생활
행방 감췄던 러 수학천재 페렐먼 찾고보니…
작년 실직… 月 5만원 연금받아

현대 수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를 풀어낸 뒤 ‘홀연히’ 사라졌던 러시아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먼(40)이 연구소에서 실직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누추한 아파트에서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그는 직장이었던 슈테크로프 수학연구소측과 사이가 나빠져 작년 12월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그 뒤 노모의 연금(한 달 약 5만4000원)에 의지하는 처지가 됐다. 페렐먼의 한 친구는 그가 ‘나는 정말 (수학적) 재능이 없다’는 무기력증에 빠져 은둔 중이라고 전했다.

국제 수학계의 ‘밀레니엄 7대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Poincar? Conjecture)’을 증명, 인터넷에 짧은 글을 올려놓았으나 미국에서 잠깐 순회 강연을 한 뒤 2003년 봄 자취를 감췄다. 그는 ‘푸앵카레 추측’ 해결에 걸어놓은 미 클레이 재단의 상금 100만 달러(약 9억5800만원)의 상당 부분을 받게 됐지만 이를 거부하고, 최근까지도 행방이 묘연했었다. 페렐먼은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연맹 총회에서 수여되는 수학판 노벨상인 ‘필즈 메달(Fields Medal)의 유력한 수상 후보자이지만 그의 대회 참석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대중의 관심을 받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수상과 상금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페렐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6세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당시에도 미국내 유수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고도 모두 뿌리치고 러시아로 돌아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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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8/200608210055.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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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포탄 화상 꼭 없애주세요”

한국 온 이라크인 아디브 므하위스
집 앞 박격포탄 터져 딸 피부 일그러져… 석달간 치료받기로

▲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이라크 소녀 코더 아델 하팀양이 치료를 받기 위해 아버지 아디브 므하위스씨의 품에 안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용국기자
7일 오전 6시 인천국제공항 26번 게이트. 두바이발(發) 대한항공 KE952편에서 수염 텁수룩한 이라크 남자가 내렸다. 아디브 므하위스(39)씨다. 이라크 남부 나자프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던 그의 품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딸 코더 아델 하팀양(4)이 안겨 있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다. 불안한 듯 검은 눈망울만 굴리던 하팀이 품을 파고들자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다. 안녕해야지.”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하팀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과 목덜미에 큼지막한 화상 흉터가 보였다. 화흔(火痕)은 전신에 있었다.

“살라말리쿰(안녕하세요).” 마중 나온 한국인들에게 인사하던 므하위스씨의 얼굴에 때로 그늘이 지나간다. 그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2004년 8월 오후 3시쯤 나자프 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어요. 집 앞에 박격포탄이 터졌는데 딸에게 불길이 옮겨 붙었습니다. 놀라 뛰쳐나간 아내는 까무러쳤습니다. 딸이 불길에 녹아 내리고 있었죠. 저는 뒤늦게 병원에서 봤는데, ‘절망’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군요.”

목숨은 건졌지만 딸의 피부는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이라크에서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목과 턱의 피부가 달라붙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겨드랑이가 달라붙어 팔을 위쪽으로 올릴 수 없었다.

므하위스씨는 “아내는 사고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도 육체적·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팀은 석 달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걱정은 끝이 없다. 화상 때문에 머리칼이 자라지 않는 오른쪽 머리, 불길에 녹아 없어진 조그만 젖꼭지…. 한국에서 연수 중인 이라크인 의사 하이들러 카림(31)씨는 “우선 신체 기능을 회복하고 미용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천공항엔 심실중격결손(VSD)으로 고생하던 산타 셰르자드(4)양도 함께 왔다. 좌·우심실 사이의 벽인 심실중격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구멍이 남게 되는 선천적 질환으로 이라크에선 ‘불치의 병’에 가깝다.

딸의 손을 잡고 이라크 북부 술레마니아에서 온 요시프 한나(36)씨는 마주칠 때마다 “슈크란(감사합니다)”을 연발했다. 비슷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모함마 아흐메드(13)군은 원광대병원을 찾아 ‘새 삶’을 얻게 된다.

행사를 마련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는 대한항공과 함께 매년 ‘이라크 어린이 환자 치료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평화회의 김태성 사무총장(원불교 교무)은 “어린 생명을 살리는 사업은 절망에 빠진 이라크 국민들에게 새 희망을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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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5/200605080059.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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