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큰스님은 나의 또 다른 부모님이시다. 부모님은 내 몸을 주셨지만 큰스님은 내 정신을 주신 분이다. 아니, 이미 내 안에 있는 보물을 찾게 해주신 분이다. 그의 가르침,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그의 대자대비심은 내가 여태껏 받았던 어느 사랑보다 값진 것이다.
내가 큰스님께 드리는 존경과 사랑은 신격화나 미화가 아니다. 그의 고단했던 삶과 그 고통 속에서 행했던 무서운 수행정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워올린 위대한 깨달음, 그리하여 살아 있는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지혜...
나는 숭산 큰스님 때문에 수행을 시작했고 비로소 내 삶의 나침반을 가진 것이다. 만약 큰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고통의 세상에서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큰스님은 나를 비롯한 모든 수행자들을 하루하루 깨어 있도록 만드는 위대한 수행자이시다.
1993년 어느 날, 뉴욕에서 내 동생 그랙에게 숭산 큰스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첫장면에서 모든 승려들이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모습이 나왔다. 그랙은 다짜고짜 나에게 "아니 어떻게 나와 똑같은 사람에게 저렇게 몸을 숙여 절을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그랙은 다큐멘터리 내내 숭산스님 법문을 다 듣더니 "이제서야 삼배를 올리는 심정을 알겠다"고 말해 나를 흐뭇하게 한 적이 있다.
- 현각 스님, 만행 2, pp. 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