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료의 편지 1: 죄의식과 용서
전세계 120여개국에 소개돼 2700만부 이상 팔린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57)가 기고문을 중앙일보에 보내왔습니다. 그의 글을 세차례로 나누어 싣습니다. 코엘료는 브라질 출신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TV 극작가, 대중음악 작사.작곡가로 일했습니다.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의 미움을 사 투옥된 적도 있습니다. 1988년 발표한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도록 권하는 '연금술사'는 특히 불황기에 사랑받는 소설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25만부 넘게 팔렸습니다. 코엘료는 브라질에 비영리 단체(코엘료 인스티튜트)를 세워 빈민층 어린이 교육, 노인 자선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메카로 순례를 떠난 한 신실한 남자가 불현듯 신(神)이 바로 자기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황망히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가린 채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제 소원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제가 일생 동안 결코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는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노라." 신이 대답했다.
남자는 깜짝 놀라 어째서냐고 물었다.
"네가 내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용서할 이유도 없다. 내가 너를 용서할 일이 없다면, 너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사랑 안에서 너의 길을 가고 가끔 내가 너를 용서하게 된다면, 너는 그러한 미덕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안고 있는 죄의식과 용서의 문제를 간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어머니들이 이렇게 푸념하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애가 그런 짓을 한 건 나쁜 친구 때문이에요. 우리 아이는 본래는 나쁜 애가 아니라구요."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우리를 화나게 한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게 된다. 용서는 죄의식이나 두려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은 모두 실수를 저지르며, 실수를 통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지면-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인 경우-우리는 고립되고 나아갈 방향을 잃게 된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용서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일에 왕도란 없겠지만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을 그 의도가 아니라 결과를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다 선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야기했을지 모르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페르시아의 코스로에스 왕이 어렸을 때, 그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스승이 한 사람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스승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를 매우 심하게 벌했다. 세월이 흐르고, 코스로에스는 왕위를 물려받았다. 왕이 된 후 그는 예전의 스승을 불러다놓고 과거에 그를 부당하게 벌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토록 심하게 나를 벌했는가?" 왕이 물었다.
"폐하는 자질이 뛰어나 곧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의가 한 사람의 인생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폐하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걸 깨달으셨겠지요. 저는 앞으로 폐하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예전에 일본 교토에서 가졌던 저녁식사 자리가 생각난다. 그때 한국인 교사 김태창씨는 서구적 사고방식과 동양적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서양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네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행하라.' 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의 모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동양에도 비슷한 격언이 있습니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이 격언은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부과한 행복의 기준은 물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사랑을 표현하는 나의 방식만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리고 오래된 아랍 속담엔 이런 게 있다. '신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로 그 나무를 평가한다.' 또한 이런 속담도 있다. '때린 자는 잊을지 몰라도 맞은 자는 결코 잊지 못한다.'
- 중앙일보, 2004.4.27
http://myfaith.netian.com/g0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