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복서 김주희 "발톱 빠지도록 연습해 챔피언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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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오후 7시. 10여명 관원이 내뿜는 열기와 땀 냄새로 체육관 안이 후끈하다. 가수 ‘비’의 노래에 맞춰 ‘퍼억 퍽’ 샌드백 두드리는 소리와 줄넘기줄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야, 너 비스듬히 서서 연습하지 말라고 했잖아. 차라리 정면으로 거울을 보든가 아예 거울을 무시해 버려.” 링 모서리에 걸터앉은 여자복서. 그녀가 싸늘하게 한마디 던지자 옆에서 훅을 날리고 있던 고등학생의 두 볼이 빨개진다. 옹다문 입과 꿰맨 자국이 선연한 콧등, 세계 챔피언 김주희는 어린 관원들 사이에서 군기반장이다.
“약점 노출시키면 그땐 끝이에요”
지난해 12월 19일 김주희는 경기 성남시 신구대학에서 열린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 플라이급(48.98㎏ 이하) 세계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승가도를 달리던 셰이퍼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3 대 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하얀 피부에 레게퍼머를 한 10대가 세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것이었다.
“(셰이퍼를) KO시키려 했는데 7회전 때 오른손이 우두둑하면서 부러지는 느낌이 왔어요. 주먹이 울리고 아팠지만 표정관리하면서 작전을 바꿨죠. 상대한테 내 약점을 노출시키면 그땐 끝이에요.” 그는 이 대회를 위해 7개월간 3500㎞를 뛰고 400회 이상의 스파링을 했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작년 5월에 열린다던 대회가 스폰서를 못구해 7개월간 열 번이나 미뤄졌기 때문이다.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뛰었어요. 발톱이 모조리 빠지고 발바닥이 다 찢겨질 때까지. 어차피 권투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운동인걸요.”
김주희는 원래 육상선수였다. 빈혈이 심해 운동을 접으려던 1999년, 그녀는 언니가 다니던 체육관에 우연히 들렀다가 글러브를 끼게 됐다. “살도 뺄 겸 재미로 한 달만 해보라”는 말에 시작한 권투. 육상선수였던 덕에 발은 빨랐지만 그렇다고 탁월한 자질을 갖춘 건 아니었다. 정문호 관장이 세계 챔피언의 싹을 알아본 건 김주희가 처음으로 링에 올랐던 때였다. 상대 남자선수 주먹에 맞아 쌍코피를 주륵 흘리면서도 끈덕지게 덤벼드는 김주희에게서 근성을 발견한 것이다.
“링 위에 서면 운동 많이 한 사람이 이겨요. 제가 졌다면 그건 상대보다 연습을 덜 한 거죠. 저번 대회 때도 ‘네가 발톱이 다 빠지도록 뛰어봤느냐, 눈이 주먹만큼 부어오르게 맞아봤느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대선수와 붙었어요. 시합에서 지면 이제부터는 잠 안자고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링에 오를 때, 숨이 차오르고 힘이 떨어질 때 그런 생각을 해요.”
남자친구도 아직 없어
훈련을 건너뛴 적도, 고된 연습에 주저앉아 울어본 적도 없었다. 두 다리가 하루 15㎞를 뛸 동안 링 위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수십 가지의 수가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여덟 바늘이나 꿰맨 콧등은 조금씩 주저앉는 중이고 보습크림 바르며 아껴야할 피부엔 얼룩덜룩한 멍이 가득하다. 권투를 시작한 지 6년째,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지만 맞는 건 여전히 아프고 두렵다.
“한 대 맞으면 욱 하는 게 올라와요. 안 그럴 선수가 있나요.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최소한 두 대는 때려야 이기는 거니까. 코가 낮아지긴 했지만 뭐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세우면 되잖아요.(웃음)”
김주희가 잘 나가기만 한 건 아니었다. 2002년 여자 초대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대선배 이인영과 맞붙었지만 4라운드 TKO 패를 당했다. 지긴 했지만 김주희가 뜨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 SBS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찍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싫다고 했어요. 그냥 운동만 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드라마 작가분이 관원인 것처럼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녹음기를 허리에 매달고 줄넘기를 하면서 저와 관장님 대화를 엿들었어요. 행동이 어째 이상해 관장님이 불러다놓고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오케이했죠. 제가 주인공들 가르치고 같이 뛰었어요.” 2003년 드라마 ‘때려’가 방영되면서 ‘얼짱 복서 김주희’의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인터넷상에 팬클럽이 만들어졌고 현재 회원이 5000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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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의 꿈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미 딴 IFBA를 포함한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이 되는것. 자신의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친언니에게 보은하고 싶은 마음이 주먹보다 앞선다. 10여년 전 집을 나간 엄마를 대신해준 사람이 바로 그의 언니였던 것이다.
“저한테는 언니가 엄마예요. 아르바이트하고 회사다니면서 관비도 대주고 필요한 걸 사줬어요. 뭐 사야 한다고 말하면 ‘그거 너무 비싼데’ 이런 소리 한마디 한 적 없었어요. 내 동생이 새벽부터 뛰는데, 죽을 만큼 권투에 매달리는데 뭘 못해주겠냐고만 했죠.”
경비일을 하는 아버지가 막내딸이 권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02년이었다. 이인영 선수와의 대결에서 무너지는 딸의 모습을 TV를 통해 본 것이다. 괜한 걱정 끼칠까봐 아버지에게 권투한다는 말을 차마 못한 것이다. “챔피언이 되면 말하려고 했거든요. 아셔도 모른 척 하신 거 같아요. 매일 맞아서 붓고 멍든 몸으로 들어오는데 왜 모르셨겠어요. 세계 챔피언 딴 날은 아빠도 아주 크게 웃으셨어요.”
그녀는 1월 15일 일본 전지훈련을 떠났다. 4대 통합 타이틀 도전에 앞서 4월 2일 일본의 가미무라 사토코와 1차 방어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저는요, 1억~2억원씩 들여가며 경기를 열어주는 분들, 돈을 내고 경기 보러오는 분들 생각하면 고마워서 연습을 게을리할 수가 없어요. 2005년 1월 1일부터 챔피언은 없어요. 그냥 ‘도전자 김주희’가 있을 뿐이죠. 이기고 지는 건 두 번째 문제예요. 정말 멋진 경기를 하고 싶어요. 기대해주세요.”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스타클릭
생년월일|1986년 1월 13일
가족|아버지, 2녀 중 막내
학력|영등포여자고등학교 졸업
키·몸무게| 160㎝·48㎏
체급|플라이급 & 라이트 플라이급
전적|9전7승1무1패(2KO)
2003년|한국 플라이급 챔피언
2004년|한국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WIBA 주니어 플라이급 2위
IFBA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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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se/news/200501/2005012200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