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진 빚, 만화로 갚아야죠"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내는 이현세씨
까치·엄지가 과거 여행하며 역사서술…"천국의 신화 외설시비 가장 아쉬워"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입력 : 2004.11.30 17:31 28' / 수정 : 2004.11.30 20:05 06'



▲ 이현세씨는 “암호화된 상징을 그림 속에 넣길 좋아한다”면서 “웅비하고 민족기상을 대변하는 독수리를 그래서 핵심적인 장면에 즐겨 그린다”고 했다.
/ 이진한기자

- 이현세 인물DB 바로가기
분노·갈등·복수·허무를 그려왔던 작가 이현세(50·세종대 영상만화학과 대우교수)씨가 ‘학습만화’ 시리즈를 생애 처음 냈다.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전10권·녹색지팡이)라는 역사만화로, 그의 작품 고정 캐릭터인 ‘까치’ ‘엄지’가 과거를 여행하며 당시 풍습과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만화가 저를 먹고살게 했으니 어린이 교육 만화로 그 빚을 갚겠다고 진작 마음먹었어요. 역사의 큰 흐름과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떠올릴까 고심했습니다.” 그는 “대부분 만화작가에게 역사·시대극으로의 회귀 본능이 있고, 초·중·고교를 경주에서 지낸 이유에선지 신라사(史)에 많이 끌렸다”고 했다.

“각(角)지고 무거웠던 그림 선(線)을 이번엔 부드럽게 바꿨다”는 그는, “먹고살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생존 게임’이 작가들이 꾸민 허구 세계보다 훨씬 극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 이현세 '남벌'
이씨는 작가로서 ‘모험’을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까치·엄지)을 역사에 동참시켜 그들 눈에 비친 모습을 그리다 보니 기록으로 얼추 넘어가도 될 부분까지 복원해야 했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자료를 살폈는데 고증(考證) 문제가 역시 어렵더라고요.”

이씨는 굵직한 사실(史實)뿐 아니라 장수의 복장, 왕관 형태 같은 의식주의 세밀한 부분까지 한국역사연구회의 감수를 거쳐 재현하느라 작업 진척이 더딘 편이라고 했다. 이번에 제1(선사시대와 고조선)·2(삼국시대 상)권을 냈고, 매월 한 권씩 추가해 내년 7월 완간할 예정이다. 그는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시리즈를 매듭지을 계획이라며, “현대사를 쓰려면 갖출 것이 많고 다루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이씨가 출세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낸 게 1982년이니, 그 시절 외인구단에 매료됐던 이들 중 다수가 학부모가 됐을 터다.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간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작가로서 큰 행복이죠. 역사의 절반이 전쟁이고 야성(野性)의 모습을 미화하는 것은 질색이지만, 아이들이 볼 거라 장면마다 조심하려 애씁니다.”


▲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29일 서울 양재동 화실에서 만난 그는 안(眼)질환으로 고전 중이었다. “손이 느려진 데다 작년부터 왼쪽 눈 시력이 안 나온다”면서도, “하루 작업시간이 10시간쯤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이날도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이씨는 “작가 인생 25년 중 가장 아쉬웠던 일은 6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던 ‘천국의 신화’ 외설 시비였다”면서 “심의와 싸우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써 허망하기도 하고 만화계 전체로 보면 표현의 자유를 얻어 뜻 깊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제가 독자라도 ‘언제적 이현세인데 아직 그림 그려 먹고사나’ 궁금할 거예요. 그릴 만큼 그렸으니 3년 후엔 완전히 손 떼려고 합니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은 꼭 다시 해보고 싶다고 했다. “(흥행에 참패했던 애니메이션) ‘아마겟돈’에 대한 복수는 꼭 해야죠. 복수 안 하곤 못 배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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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411/200411300380.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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