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젊은사람이 이런 일 힘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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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기자 생활이 2개월 남짓 남은 기간. 좀더 좋은 기사를 적어보려는 욕심에 봉사활동 체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자에게 더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했다. 왜냐면 그건 단지 공허한 내 과욕일뿐이었기 때문이다.
첫 봉사활동은 지난 9일 울산시 남구 사회복지회관의 무료 급식소에서 시작했다. 사회복지회관의 무료 배식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쌀가마 나르기, 식당 구석구석 청소하기, 식기와 식수 옮기기 등 일거리는 쏟아져 나왔다. 허리를 제대로 펴기가 힘들었다. 드디어 배식이 시작되는 오전 11시 30분. 점심을 위해 찾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굽은 허리에 상체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식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할머니, 힘드시죠? 부축해 드릴게요" 내가 먼저 나서서 식당으로 들어오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려 본다.
"아이고 젊은이 고마우이."
"할머니, 자리에 앉아 계세요. 제가 식사 갖다 드릴게요." 할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후다닥 배식구로 가서 김치, 콩나물오이무침, 추어탕, 요구르트 이렇게 마련된 배식판을 받아 할머니의 식탁 앞으로 갖다 드렸다.
"할머니,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하자 할머니는 "아이고, 젊은이 복 받을겨" 라며 식사하기 시작하신다.
이렇게 분주한 식당에서 3시간을 바쁘게 움직였더니, 겨울 기운이 음습해오는 서늘한 11월의 가을인데도 스웨터 안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른 봉사자들도 분주한 움직임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 속에는 뿌듯한 미소가 스며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밥 더 달라','국 더 달라'는 요구에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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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회관에서 무료 배식 후 기자는 '사랑의 도시락배달' 봉사팀으로 이동했다. '사랑의 도시락배달'은 혼자사는 노인들을 위해 직접 도시락을 집에 배달해 주는 것으로 도시락은 각 구 복지관에서 준비한다. 배달팀은 3인 1조. 도시락을 손수레에 싣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어이, 학생. 봉사활동 취재하러 온 거라며? 젊은 사람이 이런 일 힘들지 않아?"
"아뇨, 힘들긴요. 제 아버지뻘되시는 분들도 이렇게 웃으며 봉사활동 하는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부끄러운걸요."
"허, 젊은 사람이 기특허이. 이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봉사활동 하는지 아는 가?"
"글쎄요"
"처음에는 회사에서 시켜서 했지만, 하다보니까 내가 참 복 많은 사람이란 걸 느껴. 세상 에 이렇게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내 몸뚱아리는 그래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사실 이런 거 하기 전에는 틈만나면 붉은띠 두르고 파업할 생각만 했는데, 이런 좋은 일 하다보니 이제는 내 돈 내고 봉사활동 하고 있으니. 거참, 나도 놀랄 일이야."
봉사활동에 참여한 분들은 이렇게 처음에는 회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자의반타의반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단다.
이날 우리 팀은 7집을 돌며 도시락을 배달했다. 가는 곳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혼자서 덩그라니 집안에서 멍한 표정으로 벽만 쳐다보고 있거나 냉기가 가득한 독방에서 이불속에 숨죽인 채 계셨다. 흔히 말하는 '독거노인' 들이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손수 식사를 해결하기 힘들고, 다른 사람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통계청의 ‘2002년 사회통계조사보고서’(www.nso.go.kr/newnso/upload_file/upload1/ssol2004.hwp)에 따르면 2002년 현재 65세이상 인구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32만9000명이다. 독거노인 중에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되어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지만 사업 실패나 어려운 형편으로 실제 부양능력이 없어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된 독거노인들도 많은 형편이다. 그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 사람들이다.
"할머니 도시락 따뜻할 때 드세요"
기자는 식사 맛있게 하시라며 도시락을 아랫목에 두고 나왔다.
"저런 분들 보면 고향에 계시는 우리 엄니 생각나. 살아계실 때 좀더 잘 해 드려야 허는데…." 같이 도시락 배달하던 한 명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첫 날은 끝나갔다.
봉사활동 둘째 날. 산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차로 10여분 간 달려 도착한 곳은 정신지체 장애아동 생활재활시설인 '혜진원(http://www.hjw.or.kr/)’이었다.
보건복지부의 2004년 3월 현재 등록장애인현황에 따르면 정신지체 장애우는 11만4062명. 장애인사회재활시설은 440개소이고 이중 혜진원같은 공동생활가정은 100개소이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은 혜진원의 개원 3주년 되는 날이라 여느 날과는 달리 자축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혜운(8·정신지체1급)이는 생일을 맞았다.
혜운이는 욕심이 많아 뭐든지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 매일 학교 가길 기다리는 모범생이다. 가끔씩 어리광을 부려 야단을 맞을 때도 있지만, 예습 복습도 잘하고 인사성도 무척 밝다. 부끄럼을 잘 타며 혼자 큰 목소리로 노래를 잘 하는 혜운이는 휠체어에 몸을 뉘이고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고 눈은 양 옆으로 초점을 흩어져 있었다. 입가의 침은 마르지 않은 채 한 손은 머리 쪽에 또 다른 한 손은 허리춤에 두고, 두 발은 서로 꼬인 채로 기자와 첫 대면을 했다.
"혀~엉, 아~까(조금 전에)는 이 옷 안 입고 있었잖아?"라며 첫 인사를 대신한 혜운이는 정신지체아동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영악(?)한 아이다. 내 핸드폰을 달라고 하고서는 그걸로 온갖 장난을 다 치더니 이것저것 핸드폰의 기능을 묻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핸드폰의 기능을 이해하고 난 후 나와 '무전기놀이'를 하자며 다른 봉사자 핸드폰을 빌려오게 하고서는 나에게 100m 달리기를 여러 번 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혀~엉, 이~거~ 정말 잼있다"라며 입가에 침을 흥건히 묻힌 채 히죽히죽 웃었다.
"혀~엉, 저~어기 미끄럼틀로 밀어줘"라며 또다시 나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하는 혜운이는 사람들의 정에 목말라있었다.
내가 혜운에게만 신경을 쏟고 있자 곁에 있던 원호(14·정신지체2급)는 "형, 나랑 같이 공차자"라며 보채기 시작한다. 병아리 반의 원호는 비디오 보기와 만들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 만화캐릭터도 잘 그리고 색칠도 예쁘게 잘한다. 이야기는 잘하지만 너무 목소리가 작아 시끄러운 곳에선 알아들을 수 없어 이날처럼 자원봉사자들이 많아 시끌벅적한 날은 원호에게 귀를 귀울여야 한다. 이런 원호랑 잠깐 같이 놀고 있자 금세 혜운이가 토라졌다.
"혀~엉, 나랑 노~올자"
혜운이는 잠시 내가 신경을 놓고 있자 불안해졌는지 다시 입가에 침이 흥건해졌다. 나는 혜운이의 입가를 수건으로 닦아주고 "그래. 혜운아, 형아랑 놀자"하며 원호는 다른 봉사자에게 맡긴 뒤 다시 혜운에게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이렇게 혜운이와 씨름을 하고 있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지기 시작했고, 이날의 저녁 메뉴는 '삼겹살 바베큐'였다. 산자락에 위치한 여기 재활시설의 저녁 어스레한 때에 바베큐가 연기를 피워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다시 전쟁은 시작되었다.
혜운이는 잘 씹지 못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입안으로 음식물을 넣을 때부터 삼키는 순간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게다가 이날은 바베큐 파티로 일거리는 몇 배로 많아 졌다. 상추에 고기를 얹고 장을 적당히 발라서 김치를 그 위에다 놓고 혜운이 입안까지 넣는 일이 그렇게 순조롭지는 못했다.
"혀~엉, 밥은 숟가락으로..."
"혀~엉, 고기는 포크로..."
"혀~엉, 장은 숟가락으로..."
"혀~엉, 김치 얹어줘..."
하나에서 열까지 혜운이의 명령에 거역했다가는 난 상추쌈을 처음부터 다시 싸야 한다. 게다가 그는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상추쌈을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입 밖으로 질질 흘리기 시작한다. 그런 걸 수건으로 닦아가며 가누지 못하는 상체를 지탱해줘가며 음식물을 제대로 씹어서 삼키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그제서야 물 한 모금을 그의 입에 갖다 준다. 하지만 그 물도 먹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힘들게 혜운이의 저녁 식사를 챙긴 후 그를 잠시 옆에다 뉘이고 나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은 내 목구멍에서 쉽게 넘어가질 못한다.
"혜운이에게 왜 저런 고난을 주셨나요?"라며 나는 하늘을 원망하고 싶었다.
난 이런저런 생각으로 밥그릇을 절반도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울타리로 가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혜운이가 있는 병아리반 담임 이지현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혜운이를 달래기가 어렵죠?"
"아니에요. 힘들어도 혜운이가 무척 사랑스러워요"
"저도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언성도 높이게 되고 화도 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상처 준적도 아마 한 두 번이 아닐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함없이 나를 잘 따라주고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어주는 우리 아이들을 보게 되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생겨요. 많은 정과 함께 한 추억이 있어 그런지 하루를 보지 못해도 모두들 눈에 선하고 걱정이 되는 우리 아이들이 이젠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이 되어 버린 천사들이에요."라며 생긋 웃는다.
이곳은 시내에서 꽤 떨어진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12명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집에 간다. 그야말로 아이들과 동거동락 하고 있었다. 그만큼 아이들과 남다른 정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 그리고 요즘은 워낙 봉사단체의 활동이 왕성해서 요청만하면 여기저기서 일손을 덜어준다고 했다. 특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다.
이렇게 이곳의 하루 일정을 끝내고 혜운이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혜운아, 형 또 올게. 그동안 건강히 지내"
혜운이는 또 침을 흘리면서 나를 무심히 바라보며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손에 맏긴 한 손을 나에게 흔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혜운이의 얼굴이 눈에 밟혀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한화석유화학(주)울산공장 사회봉사활동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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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411/200411220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