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과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스님과의 인연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 스님.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이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다. 숭산 스님이 묻는다.

" 당신은 누구세요?"
나(현각 스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입을 열었다.
" 제 이름은 폴입니다."
" 그건 당신 몸의 이름입니다. 누군가, 즉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싶은 겁니다."
"……"
" 올해 몇 살이에요?"
" 스물여섯살입니다."
" 그것 역시 당신 몸의 나이입니다."

큰스님은 나의 무릎을 탁탁 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당신의 몸은 당신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나이를 알고 싶어요."
나는 완전히 할말을 잃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예일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어떤 교수님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큰스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제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 중에서)

베스트 셀러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미국인 현각 스님은 이 책에서 11월 30일 입적한 스승 숭산 스님과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진리, 삶, 죽음 이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대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서양철학을 공부한 것도 '뭔가'를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1990년 5월 하버드 대학원 대강의실에서 특별 강연을 한 한국의 숭산 큰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엇이냐, 인간이 무엇이냐, 고통은 어디에서 오느냐, 삶은 무엇이냐 이런 거대 담론에 대해 너무도 간단명료하고 막힘없는 대답으로 좌중을 파고들었습니다. 큰스님은 진리를 찾고 싶으면 수행을 하라고 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 하지 밥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요. 책이나 지식이란 바로 그 그림이라고 하셨지요. 강의가 이어지는 두시간동안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진리에 대한 의문과 갈망이 그제서야 풀리는 듯한 느낌, 이제야 진정한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날 밤 잠을 못 잤습니다."

<만행>에는 현각 스님의 어린시절부터 숭산 스님을 만나 스님이 되기까지, 그리고 외국인 수행자로서 느끼는 불교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어린시절 종교적 전통을 강하게 고수해 온 집안에서 자란 폴 뮌젠은 '진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을 따라 진리를 찾아 한없이 고민하던 시절, 그가 다닌 교회와 학교는 그에게 또 다른 의문과 회의를 안겨주었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2월 어느날 하버드신학대학원에 다니던 저자는 숭산 스님의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가 품었던 의문들의 해답이 숭산 스님의 어눌한 영어 강연속에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유명대학에서도 찾기 못했던 '진리'가 바로 선(禪)안에 있었던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를 통해 신과 종교에 대해 고민하던 청년 폴 뮌젠은 이렇게 해서 현각 스님으로 다시 태어나 구도생활을 시작한다. 가정, 종교, 명문대학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이역만리 한국땅을 찾아와 수행해 오다, 이제 사제지간의 인연을 다하게 된 것이다.

화계사 국제선원의 선원장을 맡아 국제포교의 과업을 이어받은 현각 스님은 <만행>의 에필로그에서 “전세계로 다니시다 보니 많은 한국 사람이 큰 스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 위대한 가르침도 접하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큰스님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희생을 통해 이제 전세계 사람들 은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현각 스님은 11월 30일 스승의 입적 소식을 전하며 “너희들 조심해라. 몸도 믿을 수 없고, 마음도 믿을 수 없다.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란 화두를 챙기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2004-12-02 오후 2:24:00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

붓다뉴스에서...http://buddhanews.com/news/BNC000/BNC0001362.html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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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큰 스님 - 2

People 2004. 12. 2. 04:43

이 만공문하 고봉의 수제자로 숭산(崇山) 행원(行願)이라는 인물이 있다 .... 숭산스님이라하면 우리 나라 승려들에게는 조선불교를 세계만방에 선교한 가장 성공적 스님으로서 그 고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스님이 개척한 사찰만해도 지금 세계각국 도처에 공산권까지 포함해서 없는 곳이 없다시피하다. 그리고 지금 행원스님이 문자그대로 인간세의 願을 行하고 다니고 있는 長征의 반경이란 혜초(慧超, 704~?)의 往五天竺國의 기행보다 더 방대한 것이요 마오 쩌똥의 長征보다도 더 처절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 그분의 명성은 뉴잉글란드지역, 특히 예일대학과 하바드대학권內에서는 좀 씨끌쩌끌한 것이었다 ....

베키가 아무리 나에게 쏭싼쓰님을 만나 보라고 권고했어도 나는 그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 쏭싼쓰님의 달마토크
[Dharma talk, 법어]
때는 하바드주변의 학박사들이 수백명 줄줄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

실상 속마음을 고백하자면 나는 쏭싼쓰님을 순 사기꾼 땡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인즉슨 나에겐 다음의 명료한 두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저 베키를 쳐다보건대, 저 계집아이를 저토록 미치게 만든 놈, 즉 저 계집아이가 숭산이라는 개인에게 저토록 절대적 신앙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무슨 사교(邪敎)적 권위의식을 좋아하는 절대론자일 것이고 따라서 해탈된 인간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자기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타인에게 절대적 복속과 부자유를 안겨주는 놈은 분명 사기꾼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달마토크"의 사기성에 있었다. 숭산이 다 늙어서 미국엘 건너온 사람인데 무슨 영어를 할 것이냐? 도대체 기껏 지껄여봐야 콩그릿쉬 몇 마딜 텐데......

하바드양코배기 학박사들을 놓고 달마톡을 한다니 아마도 그놈은 분명 뭔가 언어외적 사술(邪術)을 부리는 어떤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일 것이다. 正道는 言語속에 내재할 뿐이다! ....

... 캠브릿지 젠쎈타의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숭산의 달마톡을 듣는 순간,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나의 識의 작동속에서 집적해왔던 "객끼"(客氣, 커치)가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 인간의 수도를 통해 쌓아 올린 경지는 말과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몸과 몸으로 전달될 뿐이다 .... 몸과 몸의 만남은 언어가 없는 것이기에 거짓이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최소한 그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그는 해탈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속에는 위압적인 석굴암의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이아니라 동네골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땅꼬마"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몸의 해탈의 최상의 경지는 바로 어린애 마음이요 어린애 얼굴이다. 동안의 밝은 미소, 그 이상의 해탈, 그 이상의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숭산은 결코 거구는 아니라해도 작은덩치는 아니다. 당시 오순중반에 접어든(1927년, 평북선천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남)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 얼굴 그대로였다. 그의 달마톡은 정말 가관이었다. 방망이를 하나 들고 앉아서 가끔 툭툭 치면서 내뱉는 꼬부랑 혀끝에 매달리는 말들은 주어동사 주부술부가 마구 도치되는가 하면 형용사명사구분이 없고 또 전치사란 전치사는 다 빼먹는 정말 희한한 콩글리쉬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영어의 도사인 이 도올이 앉아들으면서 그 콩글리쉬가 너무도 재미있어 딴전볼새없이 빨려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콩글리쉬는 어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언어의 파우어를 과시하고 있었다. 주부-술부가 제대로 들어박힌, 유려한 접속사로 연결되는 어떠한 언어형태도 모방할 수 없는 원초적인(crude) 박력을 발하고 있었다.

그의 달마톡이 다 끝나갈 즈음,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쓰님에게 물었다. 내기억으로 그 여자는 하바드대학 박사반에 재학중인 30전후의 학생이었다.

"홭 이스 러브? (What is love?)"
숭산은 내쳐 그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었다.
"아이 애스크 유, 홭 이스 러브? (I ask you: what is love?)"

그러니까 그 학생은 대답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숭산은 말하는 것이었다.
"디스 이스 러부(This is love)."

그래도 그 여학생은 뭐라 할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동안의 숭산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것이었다.
"유 아스크 미, 아이 아스크 유. 디스 이스 라부(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 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아마 사랑철학의 도사인 예수도 이 짧은 시간에 이 짧은 몇마디 속에 이 많은 말을 하기에는 재치가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숭산의 비범함을 직감했다. 그의 달마톡은 이미 언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 그것 뿐이었다.


-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pp. 99, 101-103, 105-107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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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큰 스님 - 1

People 2004. 12. 2. 04:42

숭산 큰스님은 나의 또 다른 부모님이시다. 부모님은 내 몸을 주셨지만 큰스님은 내 정신을 주신 분이다. 아니, 이미 내 안에 있는 보물을 찾게 해주신 분이다. 그의 가르침,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그의 대자대비심은 내가 여태껏 받았던 어느 사랑보다 값진 것이다.

내가 큰스님께 드리는 존경과 사랑은 신격화나 미화가 아니다. 그의 고단했던 삶과 그 고통 속에서 행했던 무서운 수행정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워올린 위대한 깨달음, 그리하여 살아 있는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지혜...

나는 숭산 큰스님 때문에 수행을 시작했고 비로소 내 삶의 나침반을 가진 것이다. 만약 큰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고통의 세상에서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큰스님은 나를 비롯한 모든 수행자들을 하루하루 깨어 있도록 만드는 위대한 수행자이시다.

1993년 어느 날, 뉴욕에서 내 동생 그랙에게 숭산 큰스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첫장면에서 모든 승려들이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모습이 나왔다. 그랙은 다짜고짜 나에게 "아니 어떻게 나와 똑같은 사람에게 저렇게 몸을 숙여 절을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그랙은 다큐멘터리 내내 숭산스님 법문을 다 듣더니 "이제서야 삼배를 올리는 심정을 알겠다"고 말해 나를 흐뭇하게 한 적이 있다.

- 현각 스님, 만행 2, pp. 94-95

Posted by 【洪】IL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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