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조실 崇山스님 입적

입력 : 2004.11.30 18:17 57' / 수정 : 2004.11.30 20:02 39'



▲ 숭산 스님
불교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화계사 조실인 숭산(崇山·77) 스님이 30일 오후 5시 15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1927년 평남 순천군에서 출생한 숭산 스님은 평안공업학교와 동국대를 나와 1947년 마곡사로 출가했다. 1966년 일본 신주쿠에 홍법원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해외포교에 앞장서 197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홍법원을 개원했다. 캐나다 폴란드 영국 브라질 프랑스 등 세계 32개국 120여곳에 국제선원을 개설해 외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현재 화계사 국제선원장이며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유명한 현각 스님, 미국 캘리포니아에 손수 절을 짓고 있는 무량 스님 등도 그의 제자다. 다비식 일정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02)903-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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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진 빚, 만화로 갚아야죠"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내는 이현세씨
까치·엄지가 과거 여행하며 역사서술…"천국의 신화 외설시비 가장 아쉬워"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입력 : 2004.11.30 17:31 28' / 수정 : 2004.11.30 20:05 06'



▲ 이현세씨는 “암호화된 상징을 그림 속에 넣길 좋아한다”면서 “웅비하고 민족기상을 대변하는 독수리를 그래서 핵심적인 장면에 즐겨 그린다”고 했다.
/ 이진한기자

- 이현세 인물DB 바로가기
분노·갈등·복수·허무를 그려왔던 작가 이현세(50·세종대 영상만화학과 대우교수)씨가 ‘학습만화’ 시리즈를 생애 처음 냈다.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전10권·녹색지팡이)라는 역사만화로, 그의 작품 고정 캐릭터인 ‘까치’ ‘엄지’가 과거를 여행하며 당시 풍습과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만화가 저를 먹고살게 했으니 어린이 교육 만화로 그 빚을 갚겠다고 진작 마음먹었어요. 역사의 큰 흐름과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떠올릴까 고심했습니다.” 그는 “대부분 만화작가에게 역사·시대극으로의 회귀 본능이 있고, 초·중·고교를 경주에서 지낸 이유에선지 신라사(史)에 많이 끌렸다”고 했다.

“각(角)지고 무거웠던 그림 선(線)을 이번엔 부드럽게 바꿨다”는 그는, “먹고살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생존 게임’이 작가들이 꾸민 허구 세계보다 훨씬 극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 이현세 '남벌'
이씨는 작가로서 ‘모험’을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까치·엄지)을 역사에 동참시켜 그들 눈에 비친 모습을 그리다 보니 기록으로 얼추 넘어가도 될 부분까지 복원해야 했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자료를 살폈는데 고증(考證) 문제가 역시 어렵더라고요.”

이씨는 굵직한 사실(史實)뿐 아니라 장수의 복장, 왕관 형태 같은 의식주의 세밀한 부분까지 한국역사연구회의 감수를 거쳐 재현하느라 작업 진척이 더딘 편이라고 했다. 이번에 제1(선사시대와 고조선)·2(삼국시대 상)권을 냈고, 매월 한 권씩 추가해 내년 7월 완간할 예정이다. 그는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시리즈를 매듭지을 계획이라며, “현대사를 쓰려면 갖출 것이 많고 다루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이씨가 출세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낸 게 1982년이니, 그 시절 외인구단에 매료됐던 이들 중 다수가 학부모가 됐을 터다.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간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작가로서 큰 행복이죠. 역사의 절반이 전쟁이고 야성(野性)의 모습을 미화하는 것은 질색이지만, 아이들이 볼 거라 장면마다 조심하려 애씁니다.”


▲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29일 서울 양재동 화실에서 만난 그는 안(眼)질환으로 고전 중이었다. “손이 느려진 데다 작년부터 왼쪽 눈 시력이 안 나온다”면서도, “하루 작업시간이 10시간쯤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이날도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이씨는 “작가 인생 25년 중 가장 아쉬웠던 일은 6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던 ‘천국의 신화’ 외설 시비였다”면서 “심의와 싸우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써 허망하기도 하고 만화계 전체로 보면 표현의 자유를 얻어 뜻 깊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제가 독자라도 ‘언제적 이현세인데 아직 그림 그려 먹고사나’ 궁금할 거예요. 그릴 만큼 그렸으니 3년 후엔 완전히 손 떼려고 합니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은 꼭 다시 해보고 싶다고 했다. “(흥행에 참패했던 애니메이션) ‘아마겟돈’에 대한 복수는 꼭 해야죠. 복수 안 하곤 못 배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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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411/2004113003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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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접시닦이'서 대학교수 됐다

영산대 조리학부 교수된 호텔 총주방장 이상정씨
부산=장준성기자 peace@chosun.com
입력 : 2004.11.30 17:55 51'

사춘기 나이에 ‘접시닦이’가 된 뒤 36년간 조리 인생을 걸어온 호텔식당 요리사가 대학 교수가 됐다.

주인공은 국내에 5명밖에 없는 ‘조리 명장(名匠)’이자 ‘창작 조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서울 JW 메리어트 호텔 총주방장 이상정(51)씨. 이씨는 1일자로 부산 영산대학교(총장 부구욱) 조리학부 교수에 정식 임용됐다.

2002년 9월 국내에서 세 번째로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공인하는 ‘조리 명장’으로 선정돼 이 분야 최고의 장인이 된 이씨는 그랜드 하얏트, 스위스 그랜드, 리츠 칼튼, JW 메리어트 호텔의 총주방장 및 조리부장 등을 거쳤다. 그는 국제 살롱 요리 경연대회 금상, 독일 요리 올림픽 금상 수상 등 서양 조리 관련 주요 대회에서의 수상 경력만 10여회에 이르는 한국 조리업계의 ‘명인’으로 통한다.

영산대측도 “이씨는 국제적으로도 역량을 공인받은 한국 최고의 조리 명장”이라며 “서양 조리 분야에서 그를 능가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돼 적극적으로 교수 영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리 명장’의 인생은 접시닦이부터 시작됐다. 지난 68년 당시 만 15살이었던 이상정씨가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은 서울 명동의 모 호텔에서 3년 넘게 맡았던 일은 접시닦이와 청소 등 허드렛일뿐이었다. 이씨는 “매일 꼭두새벽에 식당에 나와 듣는 건 욕이요, 맞는 건 매뿐이었다”며 “당장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경희대·초당대·청운대 등을 거쳐 현재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영산에서 강의하게 될 과목은 ‘서양조리’와 ‘창작조리’. 하지만 이 요리의 달인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것은 음식 만드는 법만이 아니다.

“흔히들 요리는 예술 또는 기술이라고 하지만, 저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손님은 요리사를 믿고, 요리사는 손님을 정성스레 모시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지는 요리가 최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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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411/2004113004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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